들어볼래요?2007. 6. 13. 23:34


[호칭을 생각하다.]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호칭(呼稱). 확실히 누군가를 이름 지어 부르는 것은 단어선택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어릴 적부터 가족,친족과 관련된 호칭을 배우며 자라고, 더 나아가 남들에 대한 호칭을
배우며 살아감에도 늘 누군가를 칭할 때에 어떤 호칭을 해야 할 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호칭이라는 것이 단순히 누군가를 부를 때
쓰이는 도구가 아니라 한 존재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블로그를 기웃거리다 ‘오빠’라는 호칭에 대한 글들
(J.님 블로그http://catcradle.onblog.com/PingServer?mode=tb&id=23778/259413/p ,
아르님 블로그 http://archum20.egloos.com/tb/2260068 )을 보게 되었다. 남성들이
‘오빠’라고 불리우기를 원하는 현실에 대하여 쓰여진 글들이었는데, 이 호칭이 남성의
위계의식과 같은 것을 내포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먼 친척들을
다 따져보아도 ‘오빠’라고 부를 존재가 없었고, 어릴 적부터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터라 교회에서 ‘오빠’들을 보았을 때, ‘오빠’라고 부를 존재가 있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물론 그들을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국어사전 상 2번째 의미1)라고만
생각했지 그 속에 있는 다른 의미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사실. 안일하게 그 호칭을
사용해왔던 나2)에게 ‘오빠’라는 말에 내재하는 다른 의미에 관한 글들은 실로 충격적이었지만,
쉽사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연장자인 여성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나
나이 어린 남성에게 “누나라고 부르렴.”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글들을 읽고서 조금은
생각해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로 하루가 흘러갔다.

  그 후 인터넷상으로 어떤 모임에 가입하게 되어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장자인 남성에게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당연하게 생글거리며
대답하려다가 앞의 글들이 생각나서 주춤했지만 결국엔 그것이 아니면 부를 호칭이 없다는
생각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왠지 ‘오빠’라고 부르며 느꼈던 즐거움들이 앞으로는 망설임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지만 말이다.3)

  한편으로 호칭(또는 칭호)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던 일이 더 있었다. 몇 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길을 몰라 여기저기 헤메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디로 가야하는 지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게 되었는데, 그 분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기에 감사하다고 대답하고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참이었다.

“저기... 님!”

  ‘님? 님? 님?!’ 순간 머릿속에는 그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았고 반사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그 분께 대답했었는데 ‘님’이라는 단어에 대한 충격이 너무도 컸기에
무슨 말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친절히 알려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아, 이것이 인터넷의 폐해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 기억날 뿐.

  그 상황에서 “학생”이라거나 “저기요”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분께서 선택하셨던 단어는 안타깝게도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님’이라는 특수한 호칭이었다.
솔직히 인터넷상에서는 이름(닉네임)뒤에 ‘~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기본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연하게 쓰고 있었지만 실생활에서 듣게 된 ‘님’은 실로 충격이었다.

  그리고 ‘님’과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이름 뒤에 붙이는 ‘~씨’라는 호칭에
대한 것이다. 대학에 오게 된 후로 자주 쓰고 있는 표현으로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씨’라는 호칭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설령 상대방을 높이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공식적이거나 사무적인 자리가 아닌 한 윗사람에게는 쓰기 곤란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4)

  그렇게 위의 ‘님’과 ‘씨’는 각각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하다보니
그 표현이 서로 반대의 상황에서 나타나게 되면 당혹스러워지는 것 같다. 요즘이야 온라인의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님’이라고 부른다 하여도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다 친한 친구들과 서로 인터넷용어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아
그 당혹스러움이 덜하지만, 누군가가 온라인상에서 초면에 ‘~씨’라고 할 때면 움찔하고
놀라곤 한다. 어쩌면 이것도 습관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없이 몇 가지 주절거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호칭에 있어서는 어려운 것 투성이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다는 것도 깨달았고. 공부할 것이 이렇게도 많은데 설렁설렁 넘겨버리려는
내 자신이 오늘따라 얄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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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빠
「명」「1」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손위 남자 형제를 여동생이 이르는 말. ¶우리 오빠는 아버지를 빼닮았다./오빠, 엄마가 빨리 들어오래. §「2」남남끼리에서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는 말. ¶옆집 사는 오빠와는 친남매처럼 사이좋게 지낸다. §

2) 친한 친구 중 이틀 먼저 태어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장난삼아 ‘오빠’라고 부르거나 ‘오라버니’에서 파생하여 ‘오라방’이라는 말을 만들어 서로 키득거리며 불러대곤 한다.(......)

3) 아직 생각이 어려서 그런 것이겠지만, ‘오빠’라는 호칭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적은 나로서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다시 그 호칭을 즐겁게(...) 부르고 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각하지 못하는 것인지, 자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4)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그냥 느낌으로 그러려니 여기고 있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었다.

씨07(氏)

「I」「명」(주로 문집이나 비문 따위의 문어에 쓰여) 같은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 ¶씨는 김이고, 본관은 김해이다.§「II」「명」「의」(성년이 된 사람의 성이나 성명, 이름 아래에 쓰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공식적˙사무적인 자리나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가 아닌 한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 ¶김 씨/길동 씨/홍길동 씨/희빈 장 씨/그 일은 김 씨가 맡기로 했네.§「Ⅲ」「대」'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 주로 글에서 쓰는데, 앞에서 성명을 이미 밝힌 경우에 쓸 수 있다. ¶씨는 문단의 권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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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3월 12일에 온블록에 썼던 글. (다행히 하드 어딘가에 들어가 있더라.)


Posted by 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