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혹은 망상2008. 4. 3. 00:38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지가 비에 젖는 것이 싫어서
  짧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어두운 하늘.
  바람이 꽤 차서 몸을 움츠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갔다.
  눈 앞에서 지나가버리는 버스를 보며 한 정류장을 더 걸어가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
  다리를 건너는데 차가 막힌다.
  초조한 마음에 시계만 쳐다보다 겨우 늦지않게 도착.
  오늘은 교수님께서 티타임을 갖자고 하셨기에 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간다.
  차를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느새 1시간이 흘러가버려 남는 시간동안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다 수업을 듣고 집에 빨리 가버리자고 마음먹는다.
  어두운 하늘. 어두운 하늘.
  어두운 하늘과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 그리고 차가운 공기.
  울증이 치민다. 답답하다.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실수들까지 발목을 잡으며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나를 이끈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 이 답답함이 해소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아냐, 아직은. 아직까지는 견딜 수 있어.'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린다.
  흐느끼듯 내쉬는 숨소리에 자신을 다독이고는 걷기 시작한다.

  '그래, 음악이 필요해.'

  주섬주섬 이어폰을 찾아 귀에 끼우고 음악을 들으며 속도를 맞춘다.
  차갑게 느껴지던 바람이 외려 마음 한 구석을 시원하게 해 준다.

  '걷자.'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들리는대로 흥얼거리다 사람이 나타나면 소리를 줄이고
  다시 조금 멀어졌다싶으면 좀 더 편하게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눈 앞에 다리가 나타났다.

  '부족해. 하지만.. 아냐, 괜찮을거야.'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가 날리고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찰랑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걷고, 또 걸어본다.

  ' 그 어느 날도 이 길을 걸었지.
    그 날도 이처럼 답답했더랬지.
    하지만, 그 날에는 혼자가 아니었었지.'

  건너편이 가까워지자, 누군가 듣건 말건 제멋대로 노래 한 곡을 빠르게 부르고는
  다시 낮게 노래를 읊조리며, 흥얼거리며 걷는다.
 
  다리를 건너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별안간 피로가 몰려온다.
  다행히 정신적이 아닌 육체적인.
 

  집에 돌아와 간단히 씻고는 그대로 바닥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 요기를 하고, 소중한 이와 통화를 하고 나서
  잠들어있는 동안 온 메세지를 확인하니
  지도교수님의 호출.
  이미 말씀하신 시간은 지나버렸는데다가
  집에 와버렸는데 다시 학교까지 가기에는 무리인 듯 싶어
  결례임을 알면서도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세지만 보내고
  다시 멍하게 누워있었다.

  이런 의미인가.
  이런 의미였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늘에 잔뜩 낀 구름이 걷힌지는 꽤 되었는데
  이 마음의 구름은 언제쯤 걷히려나.

Posted by 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