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혹은 망상'에 해당되는 글 91건

  1. 2008.06.04 경향신문 구독 신청하다. 6
  2. 2008.05.27 너에게.
  3. 2008.04.24 기망(欺罔) 혹은 기망(祈望).
  4. 2008.04.03 Brummen..
  5. 2008.03.29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간다. 4
  6. 2008.03.25 칡과 등나무(葛藤). 4
  7. 2008.03.18 갑작스레 떠오른... 2
  8. 2008.03.10 꿈을 꾸었습니다. 6
  9. 2008.03.03 구두, 별리. 2
  10. 2008.03.02 고마워...
  11. 2008.02.24 찬란한 어느 오후...
  12. 2008.02.23 그리움 한 조각. 2
  13. 2008.02.22 不眠 4
  14. 2008.02.21 봄을 기다리며 쓴 엽서.
  15. 2008.02.16 피아노에 대한 단상. 8
몽상 혹은 망상2008. 6. 4. 00:18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해 경향신문 구독을 신청했다.
  전혀 위기감이 없는 동생,
  '국가 일은 다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라고 하시는 어머니.
 
  쓸데 없는 짓이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다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실을, 이 상황을 제대로 보시길 바랄 뿐이다.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5. 27. 20:59


  ......항상 부담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잘 알아. 너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그 많은 것들과 흘려버린 시간들.

그것을 돌이켜보거나, 문득 저지른 실수들이 떠오를때면 견딜 수 없는 죄책감과 아쉬움에

온 몸이 떨리기도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단다.


  아무리 괜찮다 해도, 지나간 일이라 해도, 그 때의 기억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지.

그래, 알고있어. 하지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텐데'하는 후회를 한다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아.

그것들을 토대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지. 그치?


  그리고, 넌 아직 어려. 분명 어느정도 삶을 살아왔고 삶의 무게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이 기나긴 시간의 흐름에 비추어보면 아직 어리고 어린 존재란다. 응, 자신의 선택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생각하면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그래도 있잖아,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네가 정말로 원하는 일이 있다면 시도해보렴. 네가 항상 하는 말 있잖니.

'하지 않은 일보다 하지 못한 일이 더 아쉽다'고. '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만큼

후회가 적지만, 하지 못한 것은 미련이 남을 수 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꼭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라며 미련을 가지고 후회하지 말고 한번 시도해 보렴.


  널 응원하는 사람은 사실 네 주위에 가득있단다.

  널 믿고 있어, 힘내렴. 사랑해.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4. 24. 02:44


  아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
  아아, 나의 소중한 이여!

  더 사랑하는 이가 약할 수 밖에 없고,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사랑이란 이름 뒤에 감추어 놓은 이기심으로 그대를 괴롭히는 나는,
  악독한 자라오.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과 제발 바라봐 달라는 몸짓을
  애써 모르는 척, 눈치채지 못한 척 하면서 안타깝게 만드는
  진실로 악랄한 자라오.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싶다는 소유욕과,
  나만을 계속해서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으로
  그대를 지배하고 싶어하면서도
  그대를 향한 이 마음이 혹여 들킬까,
  점점 커져가는 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까,
  혹여나 그대가 떠나버리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으로
  감정을 짓누르고 억누르다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는 우매한 자라오.

  그대여!
  용서받지 못할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그대를 놓아줄 수가 없소.  
  그대의 눈물이 나를 괴롭게 하고,
  그대의 아파하는 모습이 내 가슴을 쥐어뜯는 듯 하여도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면 안되기 때문에
  이 선을 넘어 그대에게 다가갈 수 없소.
 
  아아, 그대여.......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4. 3. 00:38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지가 비에 젖는 것이 싫어서
  짧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어두운 하늘.
  바람이 꽤 차서 몸을 움츠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갔다.
  눈 앞에서 지나가버리는 버스를 보며 한 정류장을 더 걸어가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
  다리를 건너는데 차가 막힌다.
  초조한 마음에 시계만 쳐다보다 겨우 늦지않게 도착.
  오늘은 교수님께서 티타임을 갖자고 하셨기에 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간다.
  차를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느새 1시간이 흘러가버려 남는 시간동안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다 수업을 듣고 집에 빨리 가버리자고 마음먹는다.
  어두운 하늘. 어두운 하늘.
  어두운 하늘과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 그리고 차가운 공기.
  울증이 치민다. 답답하다.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실수들까지 발목을 잡으며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나를 이끈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 이 답답함이 해소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아냐, 아직은. 아직까지는 견딜 수 있어.'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린다.
  흐느끼듯 내쉬는 숨소리에 자신을 다독이고는 걷기 시작한다.

  '그래, 음악이 필요해.'

  주섬주섬 이어폰을 찾아 귀에 끼우고 음악을 들으며 속도를 맞춘다.
  차갑게 느껴지던 바람이 외려 마음 한 구석을 시원하게 해 준다.

  '걷자.'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들리는대로 흥얼거리다 사람이 나타나면 소리를 줄이고
  다시 조금 멀어졌다싶으면 좀 더 편하게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눈 앞에 다리가 나타났다.

  '부족해. 하지만.. 아냐, 괜찮을거야.'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가 날리고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찰랑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걷고, 또 걸어본다.

  ' 그 어느 날도 이 길을 걸었지.
    그 날도 이처럼 답답했더랬지.
    하지만, 그 날에는 혼자가 아니었었지.'

  건너편이 가까워지자, 누군가 듣건 말건 제멋대로 노래 한 곡을 빠르게 부르고는
  다시 낮게 노래를 읊조리며, 흥얼거리며 걷는다.
 
  다리를 건너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별안간 피로가 몰려온다.
  다행히 정신적이 아닌 육체적인.
 

  집에 돌아와 간단히 씻고는 그대로 바닥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 요기를 하고, 소중한 이와 통화를 하고 나서
  잠들어있는 동안 온 메세지를 확인하니
  지도교수님의 호출.
  이미 말씀하신 시간은 지나버렸는데다가
  집에 와버렸는데 다시 학교까지 가기에는 무리인 듯 싶어
  결례임을 알면서도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세지만 보내고
  다시 멍하게 누워있었다.

  이런 의미인가.
  이런 의미였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늘에 잔뜩 낀 구름이 걷힌지는 꽤 되었는데
  이 마음의 구름은 언제쯤 걷히려나.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3. 29. 20:24


  낮에 외사촌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군에 입대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다음 달이면 상병이란다.
  (동생입장에서 보면 '벌써'라는 말이 서운했겠지만, 정말 '벌써!?'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와버렸다. 미안-)

  외가 쪽 서열(?)로 치면 내가 첫번째이다보니 어릴 적, 외가에 놀러가 안방에 앉아있으면
  뒤로 줄줄이 7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졸졸 따라와 안방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어른들께서 시끄러우니 아이들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요!'라고 항의하다 결국 홀로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옮기면
  와글와글 떠들던 아이들이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나를 따라 졸졸졸.
  그러다 화장실 가는데도 쫓아와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놀던 아이들이
  벌써 저렇게 컸다는 걸 생각하면 뭐랄까, 대견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그래도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것은 연장자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일까?)
  어쨌건 그냥 '누나~ 노올자~'라고 하던 아이들이 이제 '누나, ~했어요.', '누나~, ~하셨어요?'
  라는 식으로 높임말을 쓰니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도 귀엽기도 하고 그렇더라.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무섭도록 변해가는 세상에 비해
  나 자신은 왜 이리도 발전이 없어보이는걸까.
  예전의 그 자신만만하고 꿈이 가득하던 시절의 나는 어디로가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어중간한 사람 하나만 남아있는 듯.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3. 25. 00:23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마주할 수 있게 둔 거울.
  허리를 곧게 세우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다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머리카락에 눈이 갔다.
 
  '많이 길었네.'

  앞에서 보았을 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던 머리가 뒤에서는 제법 길어보인다.
 
  '자를까?'

  며칠 전 부터 봄기운에 들뜬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잘라도 다시 기를텐데. 더워지면 어차피 틀어올릴텐데.'

  하며 귀찮아하다가도,

  '사진찍을 때 쯤이면 어차피 좀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테니 미리 자르는게 나으려나?'

  하면서 갈팡질팡.

  멍하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은 착착 지나가버리고
  오늘이 와버렸다.
  별 것 아닌 문제로 갈등씩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정신이 마실갔다가 아직 안돌아온 듯.
  얼른 자야지.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3. 18. 10:22


Pacta sunt servanda.

'계약은 이행되어야한다' 혹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

문득 아침부터 이 말이 맴돌아 계속해서 되뇌었다.

Pacta sunt servanda, pacta sunt servanda...


뭔가 잊은 것이 있었나?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3. 10. 18:33


  곱게 차려입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째서인지 활극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만 같은 상황이네요.
  총으로 사람을 쏘아대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부상당하는 사람들.
  도망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건물 내 승강기를 타고 이동하니
  문이 열리는 순간 빗발치는 탄환과 총성.
  어찌어찌 그들을 피해 복도를 달리고 있는데, 눈 앞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씨익 웃으며
  제 이마에 총구를 겨누는군요.
  애초에 이 모든 일의 목적은 바로 저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는 듯한 분위기에
  목덜미에 땀이 흐르고, 입 안은 바짝 바짝 마릅니다.
 
  ...... 어라?
  딱히 무술을 배운 적도 없건만, 몸이 움직이더니 눈 앞의 사람을 처리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처리하고 정리되었다는 느낌이 들더니
  어찌된 까닭인지 영화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집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눈을 떴습니다.
  온 몸이 쑤시더군요.
  범죄 수사 액션 드라마를 좀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3. 3. 00:52


  근 4년을 넘게 신었던 구두.
  너와 함께했던 많은 날들이 이리도 생생히 떠오르는데
  검은 가죽이 다 해어져 하얗게 속이 드러나버린 이제,
  '더 이상은 함께 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직 조금 더 신을 수 있다고 여겼는데, 오늘 아니 어제가 마지막이었구나.
  그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워.
  너로 인해 멋진 사람들도 만나고, 아름다운 곳도 가 보았지.
  그런 의미있는 시간 속에 네가 있었구나.
  너의 피로가 쌓이고 쌓여 결국은 해어져 헤어지게 된 오늘.
  난 그저 정말 고마웠다는 말 밖엔 할 수가 없어.
  이제 저 차가운 수거함에 놓여있다가 멀리 가버릴 너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워.
  잘가렴, 정말 고마웠어. 좋은 추억을 갖게 해 줘서 고마워.
  안녕-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3. 2. 01:26


  잊지 않고 연락해줘서, 그리고 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하구나.
  고마워.
  정말 고마워.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2. 24. 18:22


  햇볕이 따뜻하고 밝게 비추이던 오후,
  볕이 잘 드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어렸습니다.

  이렇게 햇살이 찬란하게 세상을 감싸고 있는데,
  언 몸을 녹여주려는 듯 포근하게 품어주고 있는데,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더니 이내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지네요.

  눈부시게 아름답던 어느 오후,
  푸근한 볕에 기대어 그저 그렇게 잠들고 싶던 오후였어요.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2. 23. 03:01


  벌써 일년이 넘었네요.
  울고 싶을 때도, 웃고 싶을 때도 늘 거기, 그자리에 있을 것 같던 나의 첫번째 보금자리.
  그 보금자리를 잃게 된 지...

  온블록.
  어름어름한 달빛 창가에 있던 나의 보금자리.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새삼 그 곳이 그리운 밤이네요.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2. 22. 02:18


  불안, 근심, 걱정은 숙면의 敵이다.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2. 21. 21:40


  아직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따뜻한 햇살이 이제 곧 봄이 올거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해. 정말이지.. 조금 더 있으면 앙상한 가지에 연두빛 싹이
  돋을테고 곧이어 경쟁이라도 하는 듯 예쁜 꽃들이 여기 저기서 반겨주겠지?
  상상만해도 즐거워지는 봄 날의 풍경과 코를 스치는 봄내음이 아주 아주 기대돼.
  새삼 볕 좋은 곳으로 나들이 가고픈 생각도 든다.

  꽃이 가장 활짝 피어 아름다울 때가 중간고사기간이라는 사실이 슬프기는 하지만,
  그런 우울한 생각보다는 봄을 기다리는 이 설렘이 더 크게 다가오기에
  살을 스치며 지나가는 차가운 저 바람도 기분 좋게 넘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차가움, 어두움, 무채색의 우울함이 있는 겨울도 다가올 봄이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길 수 있는 것이겠지? 저 땅 속에 잠자고 있는
  새로운 생명이 있기에... 봄이 다가올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러니까 힘 내. 우린 더 행복해질거야.
  응, 반드시.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8. 2. 16. 14:17



  피아노.
  유치원을 다닐 나이쯤 되었을까, 친한 친구와 한참을 놀고 있다가 친구가 피아노 학원을
가야한다며 가방을 가지고 가는 그 뒷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던 아이는 결국 엄마를 졸라
피아노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아이에게는 피아노 의자에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 조차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손가락을 움직여 건반을 눌렀을 때 퍼져나오던 그 울림이 좋아서,
친구와 함께 학원을 간다는 사실이 좋아서 신이나 있었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을 가는 것이
마냥 즐겁던 무렵, 어느날부터인지 아이의 눈에 원장선생님 방에 있는 하얀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왔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너무도 예쁘고 멋진 피아노!
왠지 햇빛도 그 피아노를 향해 비추이는 것 같은 환상을 보고난 이후에 아이는
단순한 손가락 연습이라해도 다른 선생님보다 원장선생님께 레슨받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게 되었다. 아마 원장선생님께 받는 레슨이라서가 아니라 그 예쁜 그랜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던 것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랜드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 작은 가슴이 콩닥거리고 피아노의 소리가 더 예쁘게 느껴져 마법에라도 걸린 것만 같았다.
 

  정기연주회.
  학원에서 정기적으로 주관하는 연주회를 위해 열심히 연습해서 악보를 외우고,
외우고 외우다 안외워져서 속상해하기도 하며 준비한 곡을 무대 위에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였던 그 날. 공주님 같은 하얀 공단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서
홀로 주인공이 되어 한 곡을 끝내고 내려올 때 아이의 두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 후끈거렸다.
설렘과 성취감, 만족감 등등 벅차오르는 감정들. 그 날 잠자리에 들 때 까지 아이는 온 몸이
붕 떠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피아노를 장만해주셨다.
  '나의 피아노!'
나뭇결이 살아있는 그 갈색의 피아노는 아이의 부름에 학원에 있는 그 어떤 피아노보다도
예쁜 소리로 응답해 주었고, 아이는 그 피아노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보는 악보, 엄격한 레슨,
지루한 연습의 단계가 끝나고 한 곡이 완성되면 또 다음 곡으로.
 그 이후, 몇 번의 콩쿨에 나가기도 했지만 피아노를 치며 느끼던 그 두근거림이 사라지고
피아노학원을 가는 것이 마치 의무인 양 느껴져 지루하다 생각했던 그 때,
소녀는 피아노학원을 그만두었다. 책의 진도에 맞춰, 선생님이 택한 곡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곡을 치고 싶다는 오만함을 이기지 못한 것이리라.

  그렇게 레슨을 받는 것은 그만두었지만, 피아노의 소리를 참 좋아했던 소녀는
학교를 다녀와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곧잘 피아노를 치곤 했다.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피아노는 소녀와 시간을 함께했고, 소녀의 신실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피아노를 치는 것에 구애됨은 없었다.

  어느덧 소녀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소녀에게는 피아노를 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새벽 6시 20분이면 나가서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 피아노 건반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뚜껑을 쓰다듬거나 덮개 위에 볼을 대고 기대며 피아노와 교감하던 소녀는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간절함에 못이겨 학교 음악선생님께 찾아가 음악실이 비는 시간에
잠깐 피아노를 쳐도 되냐고 물었고, 평소 소녀를 예쁘게 봐 주시던 선생님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그렇게 소녀는 그 시절 또한 피아노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다.



  헤어짐.
  멀리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되어 피아노와 떨어져지낸지도 벌써 5년째.
방학 때라거나 가끔 본가에 가게 되면 하루에 3~4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있지만,
피아노와 멀어지면 느껴지는 그 간절함과 애절함이 그에 대한 사랑을 점점 더 크게 만드는 것 같다.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실력도 아니고, 어디가서 잘 친다는 이야기를 듣기에도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부족하기만 하지만, 피아노는 언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이다.


  며칠 전 내가 집에 다녀온 이후부터 어머니께서 남동생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신다. 나의 부재기간 중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던 녀석이 이제 어머니와 남동생으로 인해 즐겁게 노래할 것을 생각하니 왠지 모를 기쁨에 눈물이 난다. 그래, 신나게 노래하렴. 고마운 나의 친구여.



Posted by 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