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혹은 망상2007. 8. 27. 16:59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어떤 것에 계속 애정을 쏟다보면
그 상대(?)도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반응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듯 비웃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에는 그 반응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반발할 여지가 없겠지만,
식물의 경우는 아주 서서히, 무생물(...)의 경우에도 고장난 척 하다가
'이러면 안되잖아'라는 한마디에 작동이 되기도 하는 등의 경우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틀린 것 만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긴다.


  일례로 홀로 떨어져 살게 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외롭다는 생각이 너무도 강해
키우게 되었던 허브가 있었다. 평소에 하듯이 그 허브에게 이름도 붙여주고,
햇빛이 잘 안드는 방이었기에 아침이면 밖에 내놓고 저녁이면 다시 방 안으로 들여놓는 일을
매일같이 했으며, 힘든 일이 있거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 앞에서 떠들어대기도 하고,
괜히 음악을 들을 때도 '같이 듣자~'라고 이어폰의 한 쪽을 식물에게 양보하는
(어찌보면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운)일들을 하며 몇 달을 즐거이 보냈더랬다.

  그러다 몇 달간 본가로 돌아가야 했을 때 약간은 슬픈 마음으로 친구에게 그 식물을 맡기고
집으로 내려갔는데 그 이후 일주일이 조금 안되었을 때, 그 녀석이 나와 떨어진 직후부터
시들시들하더니 결국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그 이전 부터 상태가
좋지 못했다가 어찌 어찌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타이밍의 문제라기보다는 녀석이 나의 부재를 알고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지만)잔정이 많은 성격이라 그만큼 쉽게
상처받는 유형인 나를 보고 한 친구는 '정신차려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습관적으로 정이 가는 것을 어찌 막으리.


  어찌되었건 그런 일들을 몇 번 겪다보니 이제는 그렇게 사랑을 주면 그 사랑에 잘 반응하는
사물이 참 고맙게 느껴지고 잘 반응할 수록 더욱 더 애정이 가더라.


  뭐랄까, 사랑을 주었을 때 착실히 반응하는 그 아이들처럼
인간관계도 그렇게 솔직하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미우
들어볼래요?2007. 8. 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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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며 기사를 읽은 후 스크롤을 내렸더니
아이의 고통에 대해 같이 아파하고 분노하는 의견 사이 사이에
너무도 험한 말을, 그 아이의 상처를 후벼파는 듯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의견을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는 공간이라해도
적어도 자신의 의견을, 생각을 표현하기 전에 한 번 정도는 그것에 대해
판단해 봐야하는 것 아닌가.

옳고 그른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말을 배설하듯 뱉어내는 사람들은
그 말에 상처받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 것일까.


물론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발, 제발 한 번 정도는 표현하기 전에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사람에게는 여러가지의 표현 수단이 있지만, 그 중에서 말과 글이라는 것은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과 글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Posted by 미우
들어볼래요?2007. 6. 13. 23:34


[호칭을 생각하다.]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호칭(呼稱). 확실히 누군가를 이름 지어 부르는 것은 단어선택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어릴 적부터 가족,친족과 관련된 호칭을 배우며 자라고, 더 나아가 남들에 대한 호칭을
배우며 살아감에도 늘 누군가를 칭할 때에 어떤 호칭을 해야 할 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호칭이라는 것이 단순히 누군가를 부를 때
쓰이는 도구가 아니라 한 존재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블로그를 기웃거리다 ‘오빠’라는 호칭에 대한 글들
(J.님 블로그http://catcradle.onblog.com/PingServer?mode=tb&id=23778/259413/p ,
아르님 블로그 http://archum20.egloos.com/tb/2260068 )을 보게 되었다. 남성들이
‘오빠’라고 불리우기를 원하는 현실에 대하여 쓰여진 글들이었는데, 이 호칭이 남성의
위계의식과 같은 것을 내포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먼 친척들을
다 따져보아도 ‘오빠’라고 부를 존재가 없었고, 어릴 적부터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터라 교회에서 ‘오빠’들을 보았을 때, ‘오빠’라고 부를 존재가 있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물론 그들을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국어사전 상 2번째 의미1)라고만
생각했지 그 속에 있는 다른 의미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사실. 안일하게 그 호칭을
사용해왔던 나2)에게 ‘오빠’라는 말에 내재하는 다른 의미에 관한 글들은 실로 충격적이었지만,
쉽사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연장자인 여성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나
나이 어린 남성에게 “누나라고 부르렴.”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글들을 읽고서 조금은
생각해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로 하루가 흘러갔다.

  그 후 인터넷상으로 어떤 모임에 가입하게 되어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장자인 남성에게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당연하게 생글거리며
대답하려다가 앞의 글들이 생각나서 주춤했지만 결국엔 그것이 아니면 부를 호칭이 없다는
생각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왠지 ‘오빠’라고 부르며 느꼈던 즐거움들이 앞으로는 망설임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지만 말이다.3)

  한편으로 호칭(또는 칭호)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던 일이 더 있었다. 몇 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길을 몰라 여기저기 헤메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디로 가야하는 지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게 되었는데, 그 분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기에 감사하다고 대답하고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참이었다.

“저기... 님!”

  ‘님? 님? 님?!’ 순간 머릿속에는 그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았고 반사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그 분께 대답했었는데 ‘님’이라는 단어에 대한 충격이 너무도 컸기에
무슨 말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친절히 알려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아, 이것이 인터넷의 폐해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 기억날 뿐.

  그 상황에서 “학생”이라거나 “저기요”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분께서 선택하셨던 단어는 안타깝게도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님’이라는 특수한 호칭이었다.
솔직히 인터넷상에서는 이름(닉네임)뒤에 ‘~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기본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연하게 쓰고 있었지만 실생활에서 듣게 된 ‘님’은 실로 충격이었다.

  그리고 ‘님’과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이름 뒤에 붙이는 ‘~씨’라는 호칭에
대한 것이다. 대학에 오게 된 후로 자주 쓰고 있는 표현으로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씨’라는 호칭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설령 상대방을 높이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공식적이거나 사무적인 자리가 아닌 한 윗사람에게는 쓰기 곤란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4)

  그렇게 위의 ‘님’과 ‘씨’는 각각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하다보니
그 표현이 서로 반대의 상황에서 나타나게 되면 당혹스러워지는 것 같다. 요즘이야 온라인의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님’이라고 부른다 하여도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다 친한 친구들과 서로 인터넷용어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아
그 당혹스러움이 덜하지만, 누군가가 온라인상에서 초면에 ‘~씨’라고 할 때면 움찔하고
놀라곤 한다. 어쩌면 이것도 습관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없이 몇 가지 주절거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호칭에 있어서는 어려운 것 투성이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다는 것도 깨달았고. 공부할 것이 이렇게도 많은데 설렁설렁 넘겨버리려는
내 자신이 오늘따라 얄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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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빠
「명」「1」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손위 남자 형제를 여동생이 이르는 말. ¶우리 오빠는 아버지를 빼닮았다./오빠, 엄마가 빨리 들어오래. §「2」남남끼리에서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는 말. ¶옆집 사는 오빠와는 친남매처럼 사이좋게 지낸다. §

2) 친한 친구 중 이틀 먼저 태어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장난삼아 ‘오빠’라고 부르거나 ‘오라버니’에서 파생하여 ‘오라방’이라는 말을 만들어 서로 키득거리며 불러대곤 한다.(......)

3) 아직 생각이 어려서 그런 것이겠지만, ‘오빠’라는 호칭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적은 나로서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다시 그 호칭을 즐겁게(...) 부르고 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각하지 못하는 것인지, 자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4)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그냥 느낌으로 그러려니 여기고 있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었다.

씨07(氏)

「I」「명」(주로 문집이나 비문 따위의 문어에 쓰여) 같은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 ¶씨는 김이고, 본관은 김해이다.§「II」「명」「의」(성년이 된 사람의 성이나 성명, 이름 아래에 쓰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공식적˙사무적인 자리나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가 아닌 한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 ¶김 씨/길동 씨/홍길동 씨/희빈 장 씨/그 일은 김 씨가 맡기로 했네.§「Ⅲ」「대」'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 주로 글에서 쓰는데, 앞에서 성명을 이미 밝힌 경우에 쓸 수 있다. ¶씨는 문단의 권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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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3월 12일에 온블록에 썼던 글. (다행히 하드 어딘가에 들어가 있더라.)


Posted by 미우
들어볼래요?2007. 6. 8. 03:47

  제목 그대로, 자유게시판의 용도는 무엇일까?

  그냥 자유스럽게 글을 남기는 용도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보면
"자유게시판에는 일기 같은 거 쓰지 마세요." 라거나 "그런 이야기는 다른데 가서 하세요."
라는 말이 보이더라. 뭐랄까, 대놓고 올리는 낚시글들은 "낚였다."라는 정도로 반응하거나
그냥 무시하고 다른 글을 클릭하면서,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썼을 그런 글들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던데....... 물론 어떤 용도가 있는 게시판에
그 용도와 걸맞지 않는 글이 올라온다거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광고글
혹은 음란성 게시글이 올라온다면 한마디 해 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자유게시판은
도대체 용도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조심스레 눈치를 살펴가며 글을 써야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또 궁금한 것 하나.
유명인이 관련된 게시글을 보면 꼭 덧글에 그 사람의 안티들이 옹기종기모여 그 사람을
(소위) '까'대는데, 그냥 싫으면 지나치지 굳이 귀찮게 손가락을 움직여서 욕을 하고 또
그 반응을 보며 싸워대는 것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참 '허허허'하는
웃음 밖에 안나오더라. 직접적으로 상호간에 대화를 한다거나 얼굴을 맞대고 있어
그냥 지나치기기 곤란한 상황이라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랄까. 혹시 그것이 아니면 그렇게 글을 쓰는 분들은 굉장히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라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어찌되었건 제3자의 입장에서 구경하기-혹은 시간 때우기-에는 좋지만 말이다.)


   어쩌다보니 자신이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글이 길어져버렸다.


Posted by 미우
들어볼래요?2007. 6. 8. 02:29


  있잖아, 그거 느껴봤어?

  불현듯 생각나서 메모했던 걸 다시 제대로 정리하면, 그 때 느낀 그 감정이랄까가
안느껴지는 것 같아. 감정적으로 휘갈겨놓은 것을 후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봐서
그런 것인지.

 
  ... 나만 그래?


Posted by 미우
들어볼래요?2007. 5. 17. 07:13




  언어를 배우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언어에 대해 알아갈 수록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느 특정한 언어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만 해도 정말 어렵기 그지 없으니까. 맞춤법, 띄어쓰기 등 사실상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다보면 긴가민가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할 경우에는 조금 덜 하겠지만, 글을 쓸 경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썼다 지웠다 하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리라.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굳이 엄격하게 문법을 따져가며 말을 사용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요즘 어린 학생들이 쓴 글을 보고,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이런 저런 글들을 읽다보니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끼적거려본다. (물론, 이 글에도 여러가지 문법적인, 혹은 말도 안되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은 지적바랍니다.)


  먼저 맞춤법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 보자. 솔직히 말해서 맞춤법이 쉬운 것 만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어이없다'라고 할 때에 '어이'라는 말을 '어의'라고 한다거나 '얘기'를 '예기'라고 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바로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어이없다'의 '어이'는 '어처구니'의 준말이고, '이야기'의 준말은 '얘기'이므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데도 틀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랄까. 정말이지, 전체적인 문장에서 '않'과 '안'의 사용, '되'와 '돼'와 같은 단어의 사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본적인 명사의 맞춤법은 조금 주의를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되'와 '돼'가 혼동될 경우, '하'나 '해'를 집어 넣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안되요'와 '안돼요' 중 어떤 것이 맞는지 궁금하다면, '안하요', '안해요'와 같이 대입해보자. 정답은 '안돼요'.)

  두번째로 짚고 넘어갈 부분은 과도한 통신언어의 사용에 대한 것이다. 인터넷을 하면서 축약된 말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넷의 사용 이전에 PC통신(인터넷이 개방적인 것이라면, PC통신은 가입자 내에서만 이용가능한 폐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을 이용하던 시절부터 조금씩 사용되어오던 통신언어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다양해지더니 하루가 다르게 진화, 발전되어가고 있다. 덕분에 분명히 한국어처럼 보이는데도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곤 한다. 그것이 넷 상에서만 국한된 일이라면 괜찮겠지만, 실생활에서도 버젓이 사용되니 더욱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애교라 할 지라도, 보고서와 같은 문서에도 사용하는 사례를 목격하고 나니 웃어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신언어의 사용.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하는 지혜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세번째, 통신언어와 비슷한 맥락이기는 하지만 은어(隱語 :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한다. 요즘은 은어와 통신언어, 유행어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은어의 지나친 사용은 자기네 구성원이 아닌 다른 구성원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론이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내가 하고픈 말은 우리 말을 조금 더 아끼고 사랑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 '이번 한 번 정도야.'라는 생각들이 모여 전체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말을 하기 전 한 번만 더 생각하고 표현했으면 한다.


Posted by 미우
몽상 혹은 망상2007. 4. 8. 07:08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하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어떠한 일을 실현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를 요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의를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서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생기기도 한다. A라는 뜻으로 이야기 했는데 상대방은 B라고 이야기
한 것으로 생각해서 벌어지게 되는 이러저러한 사건들. 그러한 사건들이 좋게 결말지어져
후에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하기에 그 오해가
오해를 낳다가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골이 되어 관계를 깨뜨려버리기도 한다.



  정말이지,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해내는 사람이 참 부럽다.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정말로, 정말로 부럽다.



Posted by 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