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이야기2008. 3. 4. 19:47


  2년만에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잔뜩 긴장한채로 버스에 올랐는데 한강대교를 건너는 순간부터 눈이 펑펑 내리더군요.
  분명히 일기예보에는 '흐리기는 하지만 눈이나 비는 안온다'라고 되어있었건만!
  네, 일기예보를 믿는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요. 흑흑.
  웬만하면 비도 아니고 눈이니 맞으며 가려고 했는데 쉬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버스에서 내려 학교에 올라가는 길에 큼지막한 우산을 하나 사서 쓰고 갔습니다.
  (이로써 집에 장우산만 4개군요. [털썩])
 
  오랜만에 수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과 설렘, 그리고 묘한 두려움을 가지고
  학교에 갔더니 새내기로 보이는 여학우 하나가 건물을 물어보네요.
  설명을 하려다가 시간을 보니 얼른 데려다주고 오면 될 것 같아서 함께 우산을 쓰고
  OO관에 간 다음 다시 수업을 들으러 올라갔습니다.
  건물이 지어지는 것도 보고, 다 지어진 모습도 보았지만 그 건물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처음인지라 소심한 마음으로 움찔거리며 강의실에 가 앉았습니다.
 
  두리번 두리번-

  왠지 소그룹 형태로 배치되어있는 의자와 책상.
  아는 이들끼리 앉은 그룹도 있는 것 같지만 홀로 떨어져 앉아있는 학우가 있기에
  얼씨구나하고 다가가 앉아도 되냐고 묻고는 동석합니다.
  그렇게 쭈뼛거리며 모인 4사람.
  통성명을 하고보니 모두 아는 이 없이 홀로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군요.
  이 친구는 06, 이 친구는 05, 이 친구는 07.
  우와, 어리군요! 어려요!
  부끄러워하며 소개를 했는데, 후배들에게 어려보인다고 칭찬받았습니다. (...!?)
  빈말이라도 기분 좋더라구요. [훌쩍]
  어쨌건 한 학기 내내 엄청난 과제를 내어주시겠다고, 그리고 학점은 굉장히 짜게
  주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교수님과 한 시간을 보낸 후 그 다음 강의를 듣기 위해
  꼬물꼬물 저기 저 먼 OO관으로 갑니다.

  그러고보니 여기도 새 건물이네요.
  아는 얼굴이 하나도 안보이니 조금 불안합니다.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제 이름을 부릅니다.
  "아! 언니!!"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번 학기에 우리 학번 학우들이 대거 복학했다네요.
  그런데 겹치는 과목은 없어요. 흑-
  어쨌건 여기도 교수님께서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이 신청을 해서 그러니
  자신이 없는 사람은 나가달라'는 말씀을 하시며 압력을 주십니다.
  하지만 딱히 나가겠다는 사람은 없고 해서 이러니 저러니 하며 강의 개요를
  주우우욱- 훑고 가시는데 확실히 한동안 놀아서 그런지 바로 대답이 안떠올라요.
  울고 싶었습니다.
 
  다음 수업.
  여기도 낯선 얼굴이 한가득.
  교수님도 새롭고, 학우들도 새롭고, 강의실도 새로워요.
  뭔가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잘 못알아듣겠어요.
  그냥 자신이 발표하고 싶은 분야를 정해서 교수님께 메일로 보내면
  교수님께서 관련 판례를 내 주시고 그것으로 평석을 해서 발표하라시는 건지,
  자신이 사례를 정해서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는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흑- 또 입술이 삐죽거려집니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
  ...인데 좀 일찍 왔더니 앞 시간 수업이 아직 안끝났나보네요.
  이 익숙한 목소리는... 그 분이시군요. (......)
  아아- 저 어린양들을 보세요. 얼핏 부드럽게 들리는 그 분의 말투에 속아
  눈을 반짝거리고 있어요. 아마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열심히 강의하시는 그 분을
  존경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언젠간 알게 될 거에요. '속았다'라는 걸.
  아니, 사적으로 만날 일만 없으면 괜찮을거에요. 암요. 그렇고 말구요.
  얼마나 이해하기 쉽게 잘 강의하시는 분인데요. 점수요? 에이, 그런건 열외로 하고
  그 분의 수업을 들으면 얼마나 많은 것이 남는데요. 맞아요, 존경받으실 분이죠.
  앞에 제가 말한 건 잊으세요. 자아, 레드 썬!
  ......
  어쨌건 그 분의 수업이 마치고 강의실에 자리를 맡기 위해 스르륵 들어갔다가
  그 분과 눈이 마주쳐서 꾸벅인사를 했는데 못알아보시는 눈치입니다. (후우- 다행이에요.)

  수업시간이 되었는데 아직 안들어오시는 교수님 대신에 앞에 한 번 뵈었던 교수님께서
  갑자기 들어오시더니 이 수업은 목요일에 3시간 연강이 될 것이라며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하시네요. 3시간 연강이라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해도, 목요일에 밤 늦게 하교하게
  된다는 것이 걸리기는 해도 화요일에 한 시간 일찍 끝나니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짧은 설명을 듣고 짐을 챙겨 집으로 가는 길.
 
  딱히 한 것도 없건만 괜스레 피곤하네요.
  버스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마구마구 무거워진 짐을 추스려
  집에 오다가 세탁소에 들러서 맡긴 옷을 찾으려 했더니 한시간 후에 오래요.
  아, 포스팅하다보니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조금만 이렇게 있다가 후다닥 다녀와야겠어요.
  하아암-
  어쨌건 이제 다시 학생입니다.
  열심히 할게요. [생긋]

Posted by 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