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이야기2008. 10. 7. 20:57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 버스를 운 좋게 탄 것만 해도 감사할 노릇인데 
  마침 뒤에 빈 자리도 한 곳 남아있었던 어느 오후.

  다리를 너어얿게 벌리고 두명이 앉을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계시는 아저씨께
  "좀 앉을게요."라는 말을 하고 창문에 바짝 붙어 앉아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창문에 붙어 있는데도 아저씨께서 영역을 점점 넓히시는 것이
  약간 미심쩍던 와중에, 뭔가가 내 허벅다리(?!)를 문지르는 듯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가방아래에서 뭔가 기분 나쁘게 닿는 느낌.
  내가 예민한 것인가 싶어 가방을 바로 정리하는 척 하며 무릎을 쳐다보았다. 
 
  '역시 과민반응인가?'

  그리고 다시 창 밖을 바라보는데 또 다시 그 느낌이다.

  재빨리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보니 옆 자리의 아저씨 손이 스스슥- 하며 자기 가방 아래로 간다.

  '이상한데? 그러고보니 왜 저 아저씨는 한 손을 굳이 가방 아래로 해서 내버려두고 있는 거지?
  보통 옆자리에 사람이 앉아있으면 타인에게 닿지 않도록 손을 위로 두지 않나?'

  살짝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내가 예민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아저씨가 고의로 내 허벅다리를 더듬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이 아저씨. 점점 더 개의치 않고 더듬으신다.

  '고의로구나! 어떡하지? 내가 이 자리에 와 앉은 것부터가 잘못이었나?
  에휴, 어쨌거나 따박따박 따질까? 막, 이건 제 다린데요!라고 말해버릴까? 음.. 음....'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다가 도저히 못참겠다 싶어 아저씨를 똑바로 쳐다보며 꺼낸 한 마디. 

  "저기요, 자리가 많이 좁으세요? 제가 비켜드릴까요?"

  조금 큰 목소리에 단호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 나서 좀 공손했나싶어
  '이게 아닌가?'하고 있으니 아저씨가 "아니요."라고 하시며 자세를 바로잡으신다. 

  '그래, 내가 과민반응한 것이었을 수도 있으니 이 정도가 적당했던 것이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뭔가 미심쩍다. 
  뭔가, 뭔가가 꺼림한 것이 이대로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기에는 불안하여  
  중간 정류장에서 내려버렸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더니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Posted by 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