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이야기2008. 10. 15. 01:27


  요즘 이상하게 신용카드를 권유하는 전화가 많이 온다.
  아, 전화 뿐만이 아니구나.

  하루는 수업들으러 총총거리며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는
  "고객님~ 이번에 좋은 포인트 카드가 나왔어요~"라고 운을 띄우고 뭐라 뭐라 막 설명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신용카드인 듯 싶어서,
  "저, 그런데 그거 신용카드죠?" 라고 했더니 "네, 고객님~"이라고 대답.
  짧게 한 숨을 쉬고는 "아직 일정한 수입이 없는 학생이라 신용카드는 못만들어요."라고 했더니
  조용히 "알겠습니다."하고 끊어주셔서 참 다행이었다랄까.

  보통 그렇게 이야기한다 해도 "아, 고객님~ 그래도 이렇고 이래서 만들어 두시면 참 좋아요~"
  라며 전화를 끊지 않는 분들도 계시는지라 종종 분노지수가 마구 상승하기도 하는데
  큰 소리 내지 않고 서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통화가 끝나니 어찌나 좋은지. (......)
  사실, 옛날에는 그런 전화가 오면 "아, 필요없습니다."하고 먼저 끊어버렸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언제부터인가 조곤조곤 거절 사유를 설명하게 되었다.
  그 쪽 입장에서 보면, 조금 기분은 나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아,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고
  냉정하게 잘라버리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입도 덜 아파서 좋을 수도 있겠으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니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차갑게 잘라버리면
  은근히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이야기가 조금 어긋났는데, 며칠 전에는 통장이월을 하러 은행에 갔더니 이것 저것 해 주시고는
  "고객님, 지금 쓰시는 체크카드보다 훨씬 좋은 카드로 바꾸시는 게 어때요?"라며 설명을 시작.
  처음에 들을 때는 '아, 같은 체크카드인데 혜택이 조금 더 많은 것인가 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더니, 무이자 할부·현금 서비스 기능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신용카드임을 깨닫고
  필요없다고 거절. 하지만, 붙잡고 "이런 좋은 기회를 왜 놓치려 하시나요? (블라블라)"......
  "말이 좋아 신용카드지, 사실 따지고 보면 다 빚이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웬만하면 신용카드는
  안 만들 생각이거든요."라고 자르려고 하니 행원언니 曰, "어머~ 신용카드를 안 만들겠다구요?
  말도 안 돼. 만들어야죠." 라며 한 바탕 설명을 쏟아놓으려는 눈치.
  얼른 통장과 도장을 챙겨 "아, 그냥 별로 생각이 없네요."라고 하고는 도망치듯
  은행을 빠져나왔는데, 생각할 수록 화가 나는 것이……. (한숨)

  

  우리 가족은 신용카드를 굉장히 싫어한다.
  아버지께서는 집으로 날아오는 각종 카드들을 가위로 자르시면서 아직 어린 나와 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다.
  "신용카드라는 것은 결국에는 다 빚이란다.
  무이자네 뭐네, 할부로 하면 절약이 되네 어쩌네 해도 다달이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는 것은
  좋지 않아. 오히려 꼭 돈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한 푼 두 푼 모아 그 것으로
  한 번에 끝내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니? 결과적으로 그 달에 지출은 조금 많아지더라도
  그 다음 달 부터는 다시 모아서 +로 만들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빚을 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잖니."
  나는 그나마 포인트 (적립) 카드 등은 쓰는 편이라 우리 가족 중에서 카드가
  제일 많은 사람이지만,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아서 그런 것인지
  나도 신용카드라면 질색을 한다. 

  물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데 따른 이점이 있다는 것도 인정을 한다.
  당장 현금이 없을 경우, 현금서비스를 받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거나
  부담스러운 지출을 해야 할 경우 나누어 낼 수 있다는 점,
  각종 제휴사와 연계되어있어서 할인의 혜택이 많다는 점 등은 확실히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현재 상태로도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다는데
  굳이 싫다는 사람을 붙잡아가면서 그렇게 강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몇 번 했던 말이긴 하지만,
  제발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틀렸다고 하거나 이상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도 이해하고, 감쌀 수 있는 포용력있는 사람이고프다.)



Posted by 미우